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는 꼼수다 (문단 편집) == 출범 비화 == 공동진행자 [[정봉주]]가 훗날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153회, 2015년 12월 13일)에서 털어놓은 바에 의하면, 원래 나꼼수의 시작은 알려진 바와 같이 김어준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대중에게 망각되는 것을 우려했던 정봉주의 제안이라고 한다. 2011년 당시 김어준은 [[한겨레]]가 만들던 웹 시사방송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2017년까지 방영된 [[김어준의 파파 이스]]의 전신이다.]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때 정봉주는 언론을 타기 위해 김어준에게 몇 달 부탁해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의 한 코너에 고정출연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주류 방송의 출연이 막힌 김용민도 "시사돼지"라는 이름으로 이 방송에 고정 코너를 맡고 있었다. 이 김어준의 뉴욕타임스는 웹방송의 한계로 유튜브에 매주 업로드 되었지만 조회수는 5,000회차 정도에 불과했으며, 그다지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게다가 정봉주는 당시 현직정당인([[민주당(2008년)|민주당]] 서울 노원구갑 지구당 위원장)이었는데, 공정성의 구색을 맞추려던 한겨레측은 [[한나라당]] 측 패널을 참가시키려고 하자, 정봉주는 이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정봉주는 좀 더 본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고 영향력 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 TV]]의 [[문용식]] 대표와 접촉하여 본인과 김어준, 김용민이 출연하는 아프리카TV 방송 프로를 새로 만들려고 했으나 흐지부지되었고, 동영상이 아니라 오디오만으로 진행되는 팟캐스트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이는 다운로드받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김용민이 밝힌 바 있다. 정봉주는 나꼼수가 3-4개월 정도 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등, 별 기대를 안 했다고 한다. 사실 초기 나꼼수 에피소드는 뉴욕타임스에서 나온 토픽을 그대로 반복하곤 했다.[* 1회에서는 그냥 자기들끼리 떠드는 건만 2/3 이상을 하다가 끝나기도....] 하지만 8회에 주진우가 합류하면서부터[* 주진우는 게스트로 한 번 출연했다가 의외로 죽이 잘 맞아서 고정출연으로 바뀌게 된다. 최초의 게스트는 7회에 나온 [[고성국]] 정치평론가.] 나꼼수의 포맷이 완성되며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김어준의 진행실력, 정봉주가 국회-정당 인맥으로 물어다 오는 여의도의 썰, 이것을 뒷받침하는 주진우의 취재력, 여기에 전직 극동방송 PD로서 라디오제작을 책임졌던 김용민의 프로듀싱 역량이 합쳐저 시너지 효과를 냈고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